시몇편

*껍데기

글사냥필 2020. 3. 9. 08:33

 


껍데기

 

 한승필

 

타이가의 자작나무가

높이 높이 크는 것은

하늘에 닿으려는 천성 때문이 아니라

해를 보겠다는 발돋움 때문이다

천안 삼거리의 버들도

능수나 수양이나

무성한 가지만 축 늘어뜨린 듯하지만

그래도 크는 놈은 남모르게 크고 있다

쓸개 없는 놈이라도

옷을 벗어

제 몸의 속살만은 차마

내보이지 않는

소라껍데기 속 주꾸미를 보아라

강둑의 버들도 자작나무 모르게

밤이면 쑥쑥 하늘길을 오른다

 

타이가의 자작나무

강둑의 버드나무도

알고보면 껍질이란 옷이 있다

우리는 모두 옷을 입고 자란다

 

더는

껍데기 벗기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