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로호
한승필
破虜湖는
오랑캐를 수장했지만
나는 파로호에 어린 꿈을 수장했다
너무 쉽게 부서진 슬픔의 잔해들이
햇빛을 받은 물결 위에 눈부시다.
저 깊은 속을 물질하듯 들여다보면
너는 더 깊이 잠수하고
사실
드러내 보일 것 없는
파로호의 추억은 너무도 시시해서
뒤로 기운 역사의 기둥보다 쓸쓸하다,
애인과의 로맨스만 강바닥에 드러누운
외진 강둑
봄도 이른 젊음은
볼품없는 조각상을 세워보라고
파로호는 오늘
역사의 판도라 상자를 수장했지만
나는 파로호에
못다 핀 젊음의 꽃잎을 흩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