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몇편 103

땡감

땡감 한승필 왜 하필이면 땡감이란 말인가, 솎아내지 않아도 여름 장마를 견뎌내지 못하고 더러는 떨어지는 대부분이 떨어지는 그러면서 물러지는 그러나 놈들은 노란 단감이나 빨간 홍시로 익을 때보다 철부지 푸른 시절 더욱 단단하고 더욱 알차다, 그렇다면 놈들은 아직 꿈을 묶어놓고 미처 풀지 못하는 그렇다면 단감이나 홍시는 꿈 보따리를 풀어버린 아아, 그랬었구나, 푸른 시절에 더욱 단단했다는 떨어지긴 쉬워도 떨어지지 않고 남은 떫은 놈들의 변신 삶이 너무 깊어지면 물러 터지는 왜 하필 처음부터 땡감이란 말인가, 설익을 때 단단하고 거침없이 드높은 때 이른 것들은 모두 떫은맛이던가.

시몇편 2013.02.23

선데이서울

선데이 서울 한승필 장거리 버스를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 매점 가판대 위에 꽂흰 수많은 주 월간 잡지 중 제일 친근하게 눈에 띄는 선데이 서울 애인처럼 다정하지 않아도 볼거리가 많았던 청춘의 꽃 지금은 어디로 갔나, 선데이 서울 아무리 찾아봐도 자취를 감춘 이제 그런 잡지는 팔리지도 않겠지만 기념으로 남긴 몇 권이 수십 년 동안 서가에 꽂혀 있다 지금은 중년이지만 그 시절엔 잘나갔던 청춘스타들 내 청춘도 그렇게 싱싱했던 선데이 서울이 나를 더 늙게 하는 비탈진 기억 어디쯤엔가, 잊혀진 얼굴들 다시 돌아올 것 같은 선데이 서울

시몇편 2008.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