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몇편 103

*너무나 사랑한 사람이라서

너무나 사랑한 사람이라서 한승필 사랑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를 사랑하냐고 묻는다 -사랑은 불꽃인가, -무지개인가 다짐하고 다짐하듯 사랑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시 묻는다 죽는 그 날까지 사랑해도 되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어 사랑하고 사랑하다 바보가 된 사내가 사랑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또 다시 묻는다 아주 많이 사랑해도 되는 거냐고

시몇편 2020.08.04

*길 잃은 개미

길 잃은 개미 한승필 개미 한 마리가 나뭇잎을 걸어가다, 바람에 흔들려 차 안으로 떨어졌다. 나는 깜빡하고 집까지 왔다. 차 문을 열자 개미도 나를 따라 하차를 한다 불편한 동행이 끝난 것이다 대전에서 금산까지 장거리 여행에 지친 개미 오늘 밤 숙식을 어디에서 해결할까, 같은 종족이라도 한 식구가 아니면 받아주지 않는다는 개미의 텃새 개미는 금산에서 대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외톨이로 혼자서 살 수 있을까, 개미에게 미안하다.

시몇편 2020.07.28

*낙화

落花 한승필 가을바람에만 꽃이 질까, 봄바람에도 꽃은 피고 지더라 한번 진 꽃이 다시 필리 없지만 흘러간 꽃잎은 물살을 거슬러 돌아오지 않고 지나가는 바람에 마음만 어수선한, 임아, 그대는 지는 꽃 보지 마라 차라리 눈을 감고 돌아서라 심학규 눈을 뜨듯 천상의 꽃봉오리 滿開하는 날 하늘로 오르는 꽃향기 따라 너도 가고 나도 가는 임아, 낙화하는 것이 어찌 꽃뿐이랴 어느 항구 작은 포구에라도 한 가닥 희망의 닻줄을 걸 수 있다면 떠나가는 뱃전에 부서지는 근심일랑 더는, 더는 띄우지 말자.

시몇편 2020.07.15

*사과 씨

사과씨 한승필 사과속 씨앗들도 세상이 그리울까, 창문도 내지 않은 어둠 속에서 사과씨 끼리끼리 도란도란 나누는 숨길수록 깊어지는 사랑의 밀어 어쩌면 어둠이 그들만의 아늑한 천국이라 할지라도 진정 모르겠네 사과 속 세상 한입 툭 베어 속을 열어보면 사과의 과육은 씨앗들의 사랑을 감싸고 있다 아직은 세상에 젖은 적 없는 어둠 속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기를 그 순결한 사랑 깨고 싶지 않아서 사과에 입술을 대지 안고 바라만 본다 오래오래 숨어서 꼭 박힌 사랑 잘 지켜내시라.

시몇편 2020.05.14

*꽃잎

꽃잎 한승필 나이가 들수록 장미처럼 예뻐지는 여자가 있다 늘어나는 주름살은 부초 같은 마음이 흘려보낸 시련이라 말하리라 어디에서 시작된 강줄기런가 발원지를 더듬어 눈길을 던져본다 깊지도 넓지도 않은 그녀의 강물에 두 발을 담가본다 그리고 마음을 적셔본다 꽃잎 하나 흘러와서 걸음을 멈춘 그 마음도 주어다가 가슴에 담아본다 주름진 강가를 떠나지 못해 젖은 네 노래를 하얀 두 볼에 널어 말린다 한 잎 두 잎 마른 잎새 간직하고 싶어서

시몇편 2020.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