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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푸아 추장 선거

파푸아 추장 선거 한승필 홀라당 옷을 벗고 밥을 먹는 종족이 있다면 홀라당 옷을 벗고 부부 싸움을 하는 종족도 있다 밤 일을 하려면 누구나 홀라당 벗어야겠지 그런 종족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참 편히 살아 좋겠다 곤충도 물고기도 세렝게티 맹수도 홀랑 벗고 사냥을 하고 홀랑 벗고 밥을 먹고 암수가 만나 그 짓을 하고 아니 처음부터 옷이라는 것을 입은 적 없는 지금은 아마존의 인디오도 밤일하거나 샤워하거나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홀랑 벗지 않는데 홀라당 옷을 벗고 밥을 먹는 홀라당 옷을 벗고 패싸움을 하는 파푸아 뉴기니의 원시 부족 같은 또는 부시맨 같은 그런 놈들이 썩은 물을 마시지 않고서도 때만 왔다 하면 대낮부터 홀랑 벗고 길바닥에 나뒹군다 이제 보신탕집은 추억으로 사라져 간 눈물..

시몇편 2020.03.29

*충무 앞바다

충무 앞바다 한승필 겨울 바다에는 죽어서도 가지 말자 청춘이 파랗게 멍든 바다 누구에게 저리도 두들겨 맞았을까 뜯을 것 없는 내 아침 밥상 국물도 없는 바다 고깃배도 뜨지 않는 포구에서 해풍은 마른미역을 걷어내듯 갈고리로 세월을 낚아 올린다 그래도 찾아가는 겨울 바다 선창에 서면 갈치 떼에게 뜯기는 오장 바다는 내 육질에 입맛을 잃었는가, 더는 볼 일 없어 돌아서는 겨울 바다 됫소주 한 병 나팔 분 뒤 오장 까뒤집어 게워내고 갈거나 더는 인연의 닻줄 내리지 말자 충무 앞바다에 돌아서는 발길이 또 무겁구나

시몇편 2020.03.29

*멍게 한 접시

멍게 한 접시 한승필 충무 사돈 병문안 길이 당일치기라 동호동 명물 모둠회 한 접시 맛도 못 보고 왔다 몇 해만이었더라, 갑자기 옛 소녀의 우둘투둘한 여드름이 생각나 무심코 동네 마트에서 산 멍게 그 여자의 얼굴 같다 굴회며 미더덕도 씹는 향기가 그만이지만 충무 멍게 비빔밥은 아니더라도 껄끄럽고 쓰기만한 맛일 줄 알겠지만 초장에 찍어 먹는 멍게회 맛 충무 처녀 볼살처럼 그럴듯해 부드럽고 달달하게 넘어간다 다시 생각해도 멍게껍질 같은 충무 처녀

시몇편 2020.03.22

*껍데기

껍데기 한승필 타이가의 자작나무가 높이 높이 크는 것은 하늘에 닿으려는 천성 때문이 아니라 해를 보겠다는 발돋움 때문이다 천안 삼거리의 버들도 능수나 수양이나 무성한 가지만 축 늘어뜨린 듯하지만 그래도 크는 놈은 남모르게 크고 있다 쓸개 없는 놈이라도 옷을 벗어 제 몸의 속살만은 차마 내보이지 않는 소라껍데기 속 주꾸미를 보아라 강둑의 버들도 자작나무 모르게 밤이면 쑥쑥 하늘길을 오른다 타이가의 자작나무 강둑의 버드나무도 알고보면 껍질이란 옷이 있다 우리는 모두 옷을 입고 자란다 더는 껍데기 벗기지 마라

시몇편 2020.03.09

*나는왜 그녀를 사랑했을까

나는 왜 그녀를 사랑했을까 한승필 나는 왜 그녀를 좋아했을까 이역만리 할리우드의 페이 더너웨이를 연상의 그녀는 이국인이다 양키라면 무조건 아니었지만 그녀만은 좋았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애인과 데이트를 하면서도 보았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파리는 안개에 젖어’ ‘챔프’ ‘타워링’ ‘차이나타운’ ‘작은거인’ ‘인컨시버블’ ‘예수는 역사다’ ‘추수감사절 구하기’ 등등 금발이지만 동양적인 외모가 맘에 들었던 그녀, 얼마 전 뉴스에 사글세도 내지 못해 쫓겨났다는, ......서글퍼라……차라리 여기로…… 내게로 오라…… 내가 사랑했던 콧대가 낮은 그녀…… 그러나 나는 지금 정말로 동양적인 페이 더너웨이 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져있다 가라, 페이여 다시 보니 콧대가 낮지도 않은 옛사랑은 이제 그만..

시몇편 2020.03.07

*바늘밭

바늘밭 한승필 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바늘밭이었다 길은 외길로 길게 뻗어 있었지만 나는 그 길을 마다하고 바늘밭을 걸었다 너는 황량한 밀밭처럼 넓게 펼쳐져 있었고 이정표 같은 한그루의 포플러가 남쪽 끝에 서 있었다 마음이 구름처럼 떠돌다가 머무는 곳 天上界를 넘어서면 나타날 것 같은 十善을 닦지 못한 내가 어찌, 아아 결국은 결국은 네 가슴에 안겨도 피눈물의 바늘밭만 걷고 있었다 神을 거부한 반쪽 심장의 몸부림이여 여기도 저기도 바늘밭인가, 이정표 같은 한그루의 포플러는 북쪽 끝에도 서 있었다

시몇편 2020.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