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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바다가 그리운 사람

바다에서 바다가 그리운 사람 한승필 바다에서 바다를 외면하는 날이 있다 하사에서 장교가 된 간부학교 출신의 이 중위 황해도 어디, 고향은 모르지만 그는 부산 어느 바닷가 고아원이 집이다 달지도 못해본 일 계급 특진 대위가 되어 그는 지금 국립묘지에 한 줌의 재로 누워있다. 찾는 이 하나 없는 쓸쓸한 무덤 그를 생각하면 왠지 바다를 잊고 싶다 꿈 많은 시절, 이 중위의 밀어들이 독백으로 흘러갔을 그 바닷가, 너의 마음 한가운데 풀어 놓은 고백들이 이젠 내게로 한숨처럼 스며든다 퀴논의 밀림속에 잠 들었을 전설 같은 옛 얘기를 진주처럼 키워낸 사람 그 바다 수심 깊은 용궁이 너무 멀고 아득하다 바다에서 바다가 미치도록 그리운 날 너의 가슴 한복판에 길을 내는 일이 죽음처럼 서러울 때 청춘의 목마른 갈증을 눈물..

시몇편 2020.05.11

*애수

哀愁 한승필 눈물로 세상을 달랠 수 있었다면 나는 눈물바다에 가지 않았으리 눈물로 그대 맘을 채울 수 있었다면 나는 그대 앞에 눈물 꽃 피우지 않았으리 눈물은 그대 맘을 열 수 있지만 누군가의 등 뒤에서 섬이 되어 작아진다 부표 없이 흘러가는 나룻배처럼 눈물로 그대 맘을 채우지 못해 흘러가다 길을 잃고 섬 그늘에 피다 해당화로 떨어지는 애수(哀愁)의 낙화 2020년 5월 11일

시몇편 2020.05.11

*인형하나

인형 하나 한승필 그녀는 쇼윈도에 인형으로 서 있었다 나는 가슴 한쪽을 비워 두고 네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막연한 그리움이 여울진 순간, 고뇌에 찬 수레바퀴는 시간의 톱날에 걸려 돌아가지 않았다 너는 또 다른 우주에서 날아온 인형인가, 주인을 잃은 꽃다발만 덩그렇게 놓인 축제장 피안의 숲길에는 잔별 같은 소문만 무성했다. 사랑이 눈물로 다가서고 있었다 꿈속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세월의 이끼 낀 언덕에서 나는 가슴 한쪽을 밤새껏 비워 둔다 네 여울진 생이 머물 때까지 바람소리 뚝뚝 끊어지는 정적 속에서 나는 거기 누워 너를 기다린다 미라가 된 인형 하나를

시몇편 2020.05.05

*별

별 한승필 많고 많은 별 중에 먼발치의 별 하나 한 방울 이슬로 내 이마에 맺힌다 목마른 사막에는 흐를 수 없는 떠도는 강이라면 달빛 출렁이는 바다로 너를 띄워 보내리 그물코에 걸린 삶이라도 죽음 같은 구속으로 나를 가두겠지만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미련이란 그리움은 애간장을 녹인다 하늘을 적시는 눈물이라면 나는 한 줄기 사라지는 별이 되리라

시몇편 2020.04.29

*밸리댄서

밸리 댄서 한승필 배꼽의 내력 및 역사를 생각하며 튀르크 또는 이집트를 여행한다 아랍에는 있을 리 없다고 짐작되는 속옷 모델이 출연하는 패션쇼를 즐긴다 모델의 얼굴이나 몸매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옷감이나 패션 또한 관심이 없으면서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그마저도 관심이 없으면서 다만 그의 반라에만 눈길을 집중한다 어디를? 오직 배꼽에만 집중하고 상상한다 -착각하지 마시라 性倒錯症의 變態는 절대 아닌 나는 生態學者 배꼽은 왜 태가 끊어져 흉터만 남았을까, 난 배꼽의 내력 또는 역사에만 집중한다 배꼽만 상상하면 거기에서 사하라의 모래바람이 일어난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나일강가의 누비아인이 떠오른다 클레오파트라는 전설처럼 시시하다. 나는 속옷 모델을 밸리 댄서로 착각한다. 아이고 頭야 갑자기 날아간 둥그런 배..

시몇편 2020.04.23

*라면 한 그릇

라면 한승필 却說하고 라면에 무슨 생각 넣겠냐마는 짜장 짬뽕에 무슨 조미료 치겠냐마는 국수사리 또는 라면 사리를 눈물 아닌 맹물에 흥덩하게 말아먹는 니체와 로댕을 고명으로 첨가하는 고리탑탑한, 서글픈 한 끼 식사 채운다는 것보다 때운다는 공식의 하루 食道樂의 역사가 쓰여지는 탁자 위에 조각화를 탁본해 본다 고리끼와 도스토옙스키의 곰팡이 낀 대화는 지하에서 숨쉬고 불어터진 면 가락의 끊어지는 비애를 입에 욱여넣는다 라면 한 그릇의 수다가 철학일까, 빠져보는 각설하고 배부른 생의 위장 속 아무래도 쉬운 라면 한 냄비 누가 뜨겁게 끓여줄 거냐 그런 탁본 한 장 떠낸다 한들 라면 국물에 말아 구겨 넣는 生 그건 아니지 너무 슬픈 독백인가, 국물 한번 시원하게 넘겨 줄.

시몇편 2020.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