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구두 한승필 그녀가 시장에서 구두를 샀다고 자랑한다 나는 구두의 습성을 모르지만 내 삶의 뒤축이 달아져 있다는 것을 신어보면 잘 안다 아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달아짐은 그만큼 멀리 왔다는 내 삶이 그만큼 무뎌졌다는 자기 암시 같은 하늘의 가르침인 것이다 굳이 무너짐을 강조하지 않아도 축을 새것으로 갈아주면 되는 일 참 쉬운 방법이라고 위안하면서 “무슨 색 구두?” 에나멜은 아니겠지 가죽구두겠지 편한 마음으로 툭 던진 말에 “검은색.”이라고 그녀는 너무 쉽게 대답한다, 갑자기 구두 색이 궁금한 것은 엉뚱한 나의 잠재의식이 방향키를 잃은 것이다 좀 더 정직하게 고백한다면 빨간 구두에 대한 향수가 깊었기 때문이다 껌처럼 떨어지지 않는 빨간색에 대한 그리움이 아직도 내 안에 머물고 있는 빨간 노을이 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