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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구두

빨간 구두 한승필 그녀가 시장에서 구두를 샀다고 자랑한다 나는 구두의 습성을 모르지만 내 삶의 뒤축이 달아져 있다는 것을 신어보면 잘 안다 아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달아짐은 그만큼 멀리 왔다는 내 삶이 그만큼 무뎌졌다는 자기 암시 같은 하늘의 가르침인 것이다 굳이 무너짐을 강조하지 않아도 축을 새것으로 갈아주면 되는 일 참 쉬운 방법이라고 위안하면서 “무슨 색 구두?” 에나멜은 아니겠지 가죽구두겠지 편한 마음으로 툭 던진 말에 “검은색.”이라고 그녀는 너무 쉽게 대답한다, 갑자기 구두 색이 궁금한 것은 엉뚱한 나의 잠재의식이 방향키를 잃은 것이다 좀 더 정직하게 고백한다면 빨간 구두에 대한 향수가 깊었기 때문이다 껌처럼 떨어지지 않는 빨간색에 대한 그리움이 아직도 내 안에 머물고 있는 빨간 노을이 타고..

시몇편 2020.04.14

*마지막 편지 -젊은 날의 비망록-

마지막 편지 한승필 너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지는 그런 밤에 나는 이별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고 있었다 차라리 사랑이 한 송이 버려진 들꽃이라면 너를 복사해 책상에 두고 눈물과 한숨으로 지워냈을 것이다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창가에서 너의 얼굴만 하늘가에 그리다가 몽매한 편지지만 구겨 날렸다 너는 어느 이름 없는 별나라 요정 두서없는 맘이라도 전해주고 싶지만 그 별나라에 우체통은 있는지, 나는 그 누구도 읽지 못할 낙서 같은 글을 쓰다 다시 지운 편지지에 얼굴을 묻고 밤새껏 나를 적셨다 벗꽃이 만발한 금산천

시몇편 2020.04.12

*탄천에 별이 뜨면

탄천에 별이 뜨면 한승필 탄천에 별이 뜨면 별을 헤는 마음이 은하수로 흐르고 잠 못 이루는 밤 그대의 노래는 귓전에서 맴도네 춤추는 별을 따라 강가에 서면 별빛에 감기는 애절한 밀어 그대의 숨겨진 백합 한 송이가 굳게 닫았던 꽃잎을 열어 보이고 하늘 어디에도 슬픔에 겨워 하소연하는 별은 없어라 다시 탄천에 별이 지면 물결은 별들의 무덤이 되는 그대, 누구의 가슴으로 숨어드는가, 나는 그대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별자리를 벗어난 작은 별이어라 새벽까지 별이어라

시몇편 2020.04.11

*끈의 미학

끈의 미학 한승필 끈이라는 것 세상을 묶는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인연이란 끈도 올가미가 아니라면 시작의 첫매듭이 보이겠지만 어떤 끈이라도 매듭을 찾아가면 풀리기 마련 나는 이제 알겠다. 끈의 속성을 무언가를 열심히 묶어내려는 그러나 네게 묶인 지난날의 몸부림이 한 줌 인연의 구속이라면 이제 시련의 그늘에서 벗어나리라 쇼생크 탈출 같은 자포자기의 몸부림 속에서 그래도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쉬지 않고 매듭을 풀어야 했던 끈과의 싸움 나는 요동친다 목마른 갈증을 풀기 위해 끈이라는 인연의 연줄을 내리기 위해 아니, 어딘가에 또다시 묶여도 좋은 끈의 美學 같은

시몇편 2020.04.06

*성장통

成長痛 한승필 사랑이란 갈등의 성장통을 자극하는 일이다 그렇게 사랑이 여물어 갈 때 너와 나는 돌아서 앉아있었다 서로의 따뜻한 등을 맞대고 그리고 우리는 세상에 고개 숙여 神에게 順從했다 체념이나 복종이 아닌 흐르는 강물이 삶의 거울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너와 나는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흘러가고 있었다 조잘대는 물소리가 귀를 적시면 세상이 들려주는 노래라고 감사했다 삶과 사랑이란 갈등의 成長痛을 참아내는 일이었다 아, 쑤시는 뼈마디여

시몇편 2020.04.05

*공중분해

공중분해 한승필 맹호 3차로 간 高地 정중사는 퀴논에서 수색 중에 산화했다. 1.4 후퇴 때 일곱 살 나이로 사리원에서 피난민 틈에 끼어 단신으로 월남한 그는 고아원을 튀어나와 열일곱에 자원입대 삽 십이 가까운 말봉 중사였다 진급시켜 준다는 달달한 말에 속아 160도 안 되는 단신을 클레이모어에 찢겼다, 울며불며 오음리로 떠나던 그 날 나는 차마 얼굴을 들지 못했다 전사통지서는 누가 받았을까, 보상금은, 미처 민적란에 부부로 올리지 못한 아내와 얼굴도 보지 못한 갖난 유복녀가 있었지만 보훈처는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말이 많았다. 훈장,,,,, 국립묘지..... 개염병할 시월유신, 오공 몽땅 처먹고 나가 뒈져라 *클레이모어= 일반적으로 크레모아라고 부르는 무기로 적의 접근이 예상되는 곳에 매설하는 지뢰다...

시몇편 2020.04.04

*다방커피가 그리운 날은

다방 커피가 그리운 날은 한승필 다방 커피가 그리운 날은 커피 믹스 한 대접을 타서 마신다 헤즐럿 모카 등등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도 따라보면 한 대접이다 -매일매일 커피만 마시다가 배꿀이 터지겠네- 그래도, 밥심 보다 빵심 그리고 또 커피심 참, 센스가 넘치는 문구 커피 브랜드가 한두 개던가, 우리는 언제나 직감 또는… 촉각에 의지하고… 감각에 무너지는…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된다 다방이 멀리 떨어져 있는 날은 자판기 커피라도 넘겨야만 갈증이 풀어지는 이 지독한 중독은 무엇일까 그걸 마시며, 세계의 커피 애호가들은 브라질 콜롬비아 커피 농장의 부를 계산하겠지 세계를 상대로한 사업이라면 망할 일은 없지만 모카의 고향 예멘 사람들은 왜 그렇게 가난할까, 잠깐 고개를 갸웃해보겠지만 커피 생산국에 애국하는 ..

시몇편 2020.03.30